2016년 11월 29일 화요일

빼앗긴자들 레포트 -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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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자들 레포트

빼앗긴자들

빼앗긴자들

REPORT

김승민

'빼앗긴 자들'을 읽고

사람들은 보통 SF라 하면, 현실 도피적이며 잠시 즐기고 마는 소모품에 불과한 상업적 장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환상문학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환상문학에는 만화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편적이고 황당무계한상업적 쓰레기들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환상문학은 현실 도피적이고 황당무계한 문학이 아니라 사회 참여적인 문학이며 그 자체로서 대단한 가치를 지니는 창조적인 문학이다.

이 소설은 그런 환상문학에 해당한다. 이제 SF의 고전이 되어가는 이 소설은 작가 '어슐러 르귄'의 헤인 시리즈 중의 대표작이다. 먼저 헤인 시리즈의 기본적 설정을 알아야 하는데, 르귄의 세계에서 인류는 핵전쟁과 환경오염으로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며, 인류의 조상격인 헤인 인들의 도움으로 다시 터전을 잡고 헤인 인들을 도와 은하연합을 구축하여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그 큰 줄거리의 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세티 항성계에서 시작된다. 그곳에는 쌍둥이 행성인 우라스와 아나레스가 있다. 이 두 행성에 사는 종족은 같으면서도 다른 종족이다. 원래 황폐한 사막행성인 아나레스에는 자원을 캐는 광부들 뿐 이었지만, 150년 전 우라스의 빈부격차와 남녀차별에 반기를 든 여성 혁명가 '오도'의 사상아래 '오도니안들'은 아나레스로 이주하여 자신들만의 이상사회를 만들게 된다. 여기서 오도니즘은 바로 지구의 아나키즘이다. 따라서 격리된 각각의 아나키즘(무정부주의)과 아키즘(국가주의)의 세계는 공존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인 아나레스의 물리학자 쉐벡이 우라스로부터 초청을 받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쉐벡은 초과학의 영역인 시간물리학을 연구하는데, 이 시간물리학을 이용하면 물질의 이동개념에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이 은하에서 저 은하로 순간이동이 가능한 것이다. 아나레스의 미완성된 아나키즘에 대해서 한계를 느끼며 결국 쉐벡은 우라스로 난다. 격리된 두개의 세계 사이의 다리를 놓고 더 좋은 세상을 이룰 희망에 차서 말이다. 그러나 쉐벡은 우라스의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우라스는 자본주의 국가인 '에이-이오'국과 공산주의 국가인 '츄'국이 끊임없이 혁명이 일어나는 혼란한 후진국, '벤빌리'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며 각자 세력다툼을 하는 세상이었고, 쉐벡이 초대된 '에이-이오'의 자본주의 사회는 다수의 노동계급이 끊임없이 착취당하는 겉만 번드르르한 곳이었다. 그리고 쉐벡이 직면한 것은 자신의 시간물리학 이론을 빼앗아 자신들의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는 아키스트들의 음모였다. 쉐벡은 여기서 자신의 희망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우라스는 아나레스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더 비인간적인 사회였다. 결국 우라스나 아나레스 모두 유토피아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유토피아를 제시하지 못한다. 단지 함께 유토피아를 만들어 나가자고 제안할 뿐이다. 희망과 함께 지혜를 가지고서 말이다. 우리의 사회는 우라스에 가까운 사회이고, 절대로 완벽한 사회가 아니다. 쉐벡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소설에서 진정한 SF의 가치를 느꼈다. SF는 자연과학을 다루는 '공상과학'이지만 비단 자연과학의 영역에서만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다.이 소설 역시 자연과학의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적인 영역도 다루고 있다.

사회과학 이론들은 자연과학 이론처럼 실험하며 결과를 도출해내기가 쉽지 않다. 사회에는 방해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보통 우리는 소련의 해체로 마르크스의 이론은 틀렸다고 보는데 그것은 확실한 실험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단 소련이 망한 이유는 스탈린주의의 억압적인 관료체계와 체제의 모순이 자본주의의 그것보다 뒤떨어져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그러나 만일 트로츠키의 주장대로 전 세계가 일시에 모두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면, 자본주의라는 맞서 싸울 외부의 간섭이 없는 사회가 만들어졌다면, 결국 그 모순적인 관료주의 지배층이 자신의 지배명분을 상실하게 되고 일반 민중이 지배층을 끌어내려 정말 순수한 마르크스주의가 실현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와 같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실험을 이 소설의 과학적 설정으로 상상으로나마 극복할 수 있다. 즉, 이 소설의 배경인 아나키즘의 아나레스와 아키즘의 우라스는 우주공간으로 거의 격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정부주의 실험이라는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못했던 일이 환경을 통제하고 실험결과를 얻어내는 과학실험처럼 통제된 환경에서 비교적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허구이지만 SF의 의미는 실로 크다. 물론 실제적인 적용은 될 수는 없겠지만, 문학은 원래 허구인 것이다. 곧, 문학은 현실의 모습을 그 허구속에 구체적으로 투영하여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문학의 기능이다. 환상문학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단지 좀 특이하게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고 그 세계에 메시지를 담아놓는다는 점이 다르다. 또 SF는 그것을 과학적인 상상력으로 표현할 뿐이다. 그리고 마치 자연과학에서 각종 데이터를 가지고서 실험시뮬레이션을 해보듯이 우리 현실의 정보들을 가지고 가상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어떤 값진 결과가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물론 SF나 판타지등 환상문학이 다 그런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비적인 흥미위주의 쓰레기 환상문학은 배척받아야 마땅하다. 결국 독자가 진정한 SF작품을 판별할 수 있는 자신의 안목을 길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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